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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동문 INTERVIEW

안데르센상 후보·권정생문학상 수상, 동화 ‘푸른 사자 와니니’ 작가 이현 동문

  • 조회수 157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5-09-18
  • 동화 작가 이현 동문(국어국문학과 89) 인터뷰



우리는 풀리지 않는 역경 속에서 괴로울 때 동화처럼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동화 속 주인공들 역시 각자의 시련을 극복하며 성장한다. 장편 동화 『푸른 사자 와니니』로 어린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온 이현 동문(국어국문학과 89)은 동화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스스로를 격려할 힘을 건넨다. 2004년 전태일 문학상으로 등단해 올해로 등단 20주년을 맞은 그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작가부문 한국 후보(2022)이자 권정생 문학상 수상자(2025)로서 매 작품마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며 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왔다. 이현 동문의 글쓰기 여정을 숙명통신원이 들어보았다.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이라고 합니다. 『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와 『나의 첫 역사책』 시리즈, 『동화 쓰는 법』 등을 출간하며 다양한 동화와 청소년 장편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2. 동문님께서는 광고회사 직원, 방송국 구성작가, 학원 강사, 서점 주인 등 여러 직업을 거친 뒤 등단하셨습니다. 늘 글과 연결된 삶이었는데요. ‘글을 써야겠다’라고 마음먹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학교에 다니면서 글쓰기와 관련된 활동을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저 예전부터 막연히 ‘글을 써보고 싶다’라는 마음만 있었을 뿐이었죠. 실제로 글을 쓰기 위해선 일정한 작업량과 기초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되어야겠다’라는 특별한 계기보다는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힘을 갖출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3.  국제아동청소도서협의회(IBBY) 아너리스트인『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는 100만 부 이상 판매된 동문님의 대표작이죠.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계에서 작고 연약한 존재인 ‘와니니’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푸른 사자 와니니』는 ‘‘약육강식’,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이긴다는 그 진리가 정말 당연한 걸까?’ 이 질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됐어요. 인간 사회에서는 한 번 힘을 가진 자가 오랫동안 약자를 지배하며 군림하죠. 하지만 동물의 세계는 조금 달라요. 사자라고 해서 늘 쉬운 삶을 사는 건 아니거든요. 생존을 위해 달려야 하고, 때로는 먹이를 찾지 못해 굶기도 해요. 초원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의 삶이 임팔라보다 쉬울 게 없을 때도 많죠. 이로부터 ‘와니니’라는 캐릭터가 태어났어요. 그는 다른 사자들보다 작고 여려서 결국 무리에서 추방당한 존재예요. 가장 약한 사자가 초원 한가운데에서 스스로 삶을 일구어 나가는 이야기가 바로 『푸른 사자 와니니』 입니다.


1권을 쓸 때는 동물 다큐멘터리와 해외 서적들을 정말 많이 찾아보며 공부했어요. 이야기 하나하나가 생태적 사실과도 어긋나지 않도록 말이죠. 1권에 대한 반응이 정말 좋아서 후속편을 기다리는 어린이 독자들이 많았고, 결국 3년 뒤에는 직접 세렝게티로 향했어요. 그곳에서 여러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의 영토를 찾아가는 와니니 무리의 이야기로 2권을 완성했죠. 이렇게 시리즈가 이어지며 올해 7월, 드디어 8권이 출간됐어요. 『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는 총 10권으로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독자들과 함께 와니니가 달려온 여정의 끝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네요.


4. 작품을 집필하실 때 ‘주제’와 ‘인물’ 중 어느 쪽을 먼저 떠올리시나요? 


둘 다 시도해 봤지만, 주제를 먼저 정하고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이야기가 주제에 끌려가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인물의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거나 억지스러워지기도 하죠. 독자의 마음에 결국 오래 남는 건 ‘인물’의 이야기와 그들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쓸 때 주제보다는 인물을 먼저 떠올려요. 그 인물이 어떻게 느끼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이야기가 살아나고, 그 속에서 주제도 자연스럽게 피어나거든요. 


『푸른 사자 와니니』의 경우를 들자면, 초원이라는 배경 그리고, 영화 라이온킹 등에서 보이는 암사자들의 무력한 모습에 대한 의아함에서 시작된 이야기예요. 그러다 ‘와니니’라는 인물을 떠올렸고, 그를 따라 세렝게티를 함께 걷다 보니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는 주제로 이어졌지요. 인물이 먼저고, 주제는 그 인물을 따라가며 서서히 드러난 셈이죠. 『라이프 재킷』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부터 어떤 주제를 정해놓고 쓴 게 아니라, ‘어떤 인물들이 등장할까?’, ‘그들이 어떤 상황에 놓일까?’를 상상하며 글을 써 나갔어요. 그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나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5. 가장 최근에 발표하신 청소년 소설 『라이프재킷』은, 동문님의 고향인 부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청소년 소설은 개인의 고민과 사회 문제를 함께 다루며 치유와 연대를 이야기하는 장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책은 어떤 문제의식이나 영감에서 출발하게 되었나요?


한 명의 작가이자 독자로서 오래전부터 아쉬웠던 점은, 문학 속 배경이 서울과 수도권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었어요. 대부분의 주인공은 표준어를 쓰고,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도 자연스럽게 수도권으로 연상되곤 하죠. 그로부터 저는 늘 여러 지역의 고유한 분위기와 정서를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실제로 철원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1945, 철원』을 쓰기도 했어요.


『라이프 재킷』은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제가 태어난 부산을 배경으로 쓰게 된 작품이에요. 마침 코로나 시기에 해운대에 작업실을 얻게 되면서, 부산만의 색깔과 키워드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죠. ‘바다’, ‘요트’ 같은 부산다운 요소들을 살리면서 이야기를 구상했어요. 소설 속 여섯 명의 아이들은 요트를 타고 광활한 바다로 떠나 모험을 시작하지만, 각자의 선택이 결국 위기를 불러오게 됩니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이기심, 그리고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그들을 점점 궁지로 몰죠. 


청소년 소설은 내면의 고민이나 정서적인 상처 등 ‘마음’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이야기, 직접적인 경험과 행동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실제로 바다로 나아가고, 풍랑을 겪고, 친구를 잃기도 하죠. 몸으로 부딪치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생각에서 『라이프 재킷』이 탄생했습니다.



6. 동문님께서는 우리대학 스토리텔링연계전공의 ‘소설·동화창작실습’ 강의를 맡있던 경험도 있는데요. 많은 대학생이 글쓰기를 ‘귀찮고 어려운 과제’로 느끼고는 합니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즐거운 글을 쓰기 위한 팁이나 비법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그럴 때 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상대’를 떠올려요. 누군가를 향해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글이 훨씬 잘 풀리거든요. 단지 제 생각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시키고, 마음을 움직이겠다고 생각하면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막연하게 ‘잘 써야지’보다는 ‘이 사람에게 닿게 써야지’라는 생각이 글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강의를 하면서 느끼곤 했지만, 많은 학생이 일상과 먼 곳에서 글감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신이 잘 알고 있고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훨씬 즐겁게 대화할 수 있잖아요. 글쓰기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마다 글솜씨가 다를 수는 있지만,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주제를 선택하면 자신의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글쓰기가 버겁게 느껴진다면 억지로 멋진 이야기를 지어내려 하지 말고, 지금 내 일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꺼내보세요.


7. 영상 콘텐츠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짧고 강한 자극을 주는 영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읽기’라는 행위는 점점 낯설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책과 글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책을 읽는 건 영상 시청에 비해 확실히 번거로운 일이에요.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책이라는 준비물을 갖춘 뒤에 온전히 그 안에 몰입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글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있다고 믿는데, 바로 ‘다른 세계를 살아보는 일’이에요. 한 인물의 마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며 또 하나의 삶을 체험해 보는 거지요. 그런 경험은 영상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자극 속에서는 얻기 어려운 감정이에요.


이는 문학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비문학도 마찬가지로 정보만 얻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쓴 그 사람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경험입니다. 책 한 권을 온전히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서로 무관심하고 짧게 스쳐 지나가는 일이 많은 현실에서 누군가의 생각을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듣는 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세계를 상상하며 그 안에서 잠시 살아보는 일. 그게 바로 독서가 가진 가장 큰 힘이고, 우리가 책과 글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8. 지난 5월, 『푸른 사자 와니니』가 제16회 권정생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는데요. 수상소감에서 언급하신 ‘어린이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이란 어떤 글인가요?


여러 곳에서 어린이 독자들을 만나면 생각보다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살기 힘들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요즘 어린이들의 현실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본래 쉽지 않은 일이죠. 어린이들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쉽지 않은 인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린이 독자라고 해서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서, 몇 걸음 앞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인생이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결국 저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이란, 거짓된 위로가 아닌 진실된 힘을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되, 그 속에서도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는 마음을 전하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9. 작가이자 사람 ‘이현’으로서, 앞으로 써 내려가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작가로서는 언제나 조금은 더 나은 이야기,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가장 사랑하는 독자인 어린이가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라고 말해주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고 싶습니다. 올해로 등단 20주년이 되었고, 『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도 이제 완간을 앞두고 있어요. 그동안은 ‘얼마나 많이 쓸 수 있을까’라는 양적인 고민이 컸다면, 이제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라는 질문이 제 안에서 더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이현’으로서는 ‘앞으로 어떻게 멋지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말하자면,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달까요. 나이가 든다는 건 가능성이 줄어드는 일인지 모르지만 한편 ‘미지’가 하나씩 줄어드는 일이기도 하지요. 대학생인 여러분은 그 가능성과 미지가 무한한 만큼, 생각도 고민도 많은 시기겠죠. 그 무한한 가능성과 미지의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젊은 후배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취재: 숙명통신원23기 서예린(문헌정보학과24), 23기 서희(가족자원경영학과24)

정리: 커뮤니케이션팀